실험 기록현장 기록2026.08.07읽는 데 5분

헤르메스 에이전트를 셋업한 날,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AI에게 일을 맡기는 것과, AI가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다릅니다. 헤르메스 에이전트를 세팅하며 역할을 나누고 자동화 범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건, 결국 필요한 건 더 똑똑한 챗봇이 아니라 일을 설계하고 판단하며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헤르메스 에이전트를 셋업한 날,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AI를 쓰는 사람은 많아졌습니다. 그중에서도 AI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과, AI가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사람은 갈립니다. 비슷해 보여도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최근 헤르메스 에이전트를 셋업하면서 그 차이를 더 선명하게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대화형 AI를 조금 더 편하게 쓰는 방법"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질문하고 답을 받고, 필요하면 글을 쓰고 자료를 정리하는 도구 말입니다.

헤르메스는 대화, 자료 조사, 코드 작업, 콘텐츠 초안, 일정 자동화처럼 성격이 다른 일을 역할별 AI 에이전트와 자동화 흐름으로 연결해 운영하는 개인용 에이전트 환경입니다.

그런데 세팅을 이어갈수록 이건 도구 하나를 추가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일을 누구에게 맡길지, 어떤 결과를 자동으로 저장할지, 실행은 어디까지 허용할지, 그리고 마지막에 누가 판단할지를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AI를 잘 쓰는 문제라기보다, 일을 설계하는 문제에 가까웠습니다. 요즘 말하는 Process Innovation, PI입니다.

챗봇에서 역할을 가진 팀으로

지금까지의 AI 활용은 대체로 단순한 대화로 시작하고 끝났습니다. "이 글을 요약해줘", "아이디어를 내줘", "이 코드를 고쳐줘"라고 요청하고 결과를 받는 방식입니다.

빠르고 유용합니다. 다만 일이 쌓일수록 한계도 분명해집니다. 어제 나눈 대화가 오늘의 프로젝트 맥락으로 이어지지 않고, 아이디어와 실행 결과가 흩어집니다. 무엇을 자동화했고 무엇을 사람이 확인했는지도 모호해지기 쉽습니다.

헤르메스를 세팅하며 제가 먼저 한 일은 AI의 역할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 대화와 빠른 판단을 맡는 기본 에이전트
  • 코드 구현과 기술 검증을 맡는 개발 역할
  • 자료 조사와 설계 검토를 맡는 리서치 역할
  • 콘텐츠 초안과 편집을 맡는 콘텐츠 역할
  • 일정, 자동화, 저장소, 운영 상태를 관리하는 운영 역할

중요한 건 역할을 많이 만드는 게 아니라, 일의 성격에 맞춰 책임의 경계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글의 초안은 AI가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글에 어떤 경험을 담을지, 어떤 주장을 할지, 공개해도 되는 표현인지 판단하는 일까지 넘길 수는 없습니다. 코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현은 맡길 수 있지만, 실제 서비스에 반영할지와 사용자가 감수할 리스크는 사람이 결정해야 합니다.

AI는 팀원이 될 수 있지만, 최종 책임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사람의 판단이 더 중요

자동화를 시작하면 처음엔 "이제 할 일이 줄겠다"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실제로 반복적인 수집, 분류, 요약, 초안 작성, 알림 같은 일은 훨씬 빨라집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자료를 수집하고, 원문은 보존하고, 필요한 내용만 구조화된 지식으로 정리하는 흐름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일정한 형식의 브리핑이나 리마인드도 자동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화가 늘어난다고 판단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판단해야 할 지점이 더 또렷해졌습니다.

어떤 자료를 지식으로 남길 것인가. AI가 만든 결과 중 무엇을 채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실행 권한은 어디까지 줄 것인가. 오류가 났을 때 자동으로 재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멈추고 사람이 확인할 것인가.

이런 질문은 기술이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운영을 얼마나 잘 설계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반복적이고 저위험인 일은 AI에게 최대한 맡기되, 사람의 맥락과 책임이 필요한 일은 남겨두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공개 발행, 외부 배포, 권한 변경, 되돌리기 어려운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사람이 확인하는 장치를 뒀습니다.

AI가 빨라질수록, 사람이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설계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고 느낍니다.

'비서'보다는 작업의 흐름

이번에 새로 만든 블로그도 이 생각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AI 기획자로 살아남기'는 정적인 소개 페이지가 아니라, 직접 글을 쓰고 운영할 수 있는 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관리 화면에서 Markdown으로 글을 작성하고, 대표 이미지를 올리고, 임시저장하거나 공개할 수 있습니다. 공개된 글은 검색엔진이 읽을 수 있도록 sitemap, RSS, canonical 같은 기본 구조도 함께 갖췄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작은 변화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이제 콘텐츠는 누군가에게 개발을 요청해야만 쌓이는 결과물이 아니라, 생각이 생겼을 때 직접 기록하고 검토한 뒤 세상에 꺼낼 수 있는 작업 흐름이 되었습니다.

AI는 여기서 글을 대신 쓰는 존재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자료를 찾고, 구조를 제안하고, 초안을 다듬고, 누락된 관점을 점검합니다. 반면 글의 경험과 결론, 공개 여부는 제가 결정합니다. 가장 중요하고 사람만 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기획자가 해야 할 일도 비슷합니다.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이 흘러가는 구조를 만들고 중요한 판단을 제때 내리는 사람 말입니다.

AI기획자는 오케스트레이터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좋은 리더가 일을 잘게 나누고, 적합한 사람에게 맡기고, 결과를 검토하며, 필요할 때 방향을 수정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AI 에이전트도 결국 비슷합니다.

좋은 결과는 "AI에게 일을 시켰다"는 사실만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필요한 맥락을 제공해야 하며, 결과를 검토할 기준도 있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서 멈추고 누구에게 넘길지도 미리 정해야 합니다.

최근 읽은 연구에서도 AI를 단순히 위임한 사람보다, 방향을 제시하고 결과를 검토하며 판단한 사람이 더 좋은 성과를 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AI 활용 능력은 프롬프트를 잘 쓰는 기술보다, 일을 정의하고 검증하고 수정하는 능력에 더 가깝습니다.

결국 AI 시대의 기획자는 문서를 더 빨리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자동화할지 결정하고, 무엇을 사람에게 남겨둘지 구분하고, 어떤 실패는 허용하되 어떤 실패는 막아야 하는지 정하는 사람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남기고 싶은 것

이 블로그는 AI 도구 사용법만 정리하는 공간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헤르메스 에이전트를 세팅하며 겪은 시행착오, 작은 자동화가 실제 생활과 일에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AI를 활용하는 조직과 사람에게 어떤 역량이 필요해지는지 기록하려 합니다.

잘된 결과만 남기기보다, 자동화가 멈춘 이유와 기대만큼 효과가 없었던 실험도 함께 남기고 싶습니다. 그래야 다음 판단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메스 에이전트를 셋업한 날, 제가 얻은 것은 더 똑똑한 챗봇이 아니라 일을 나누고, 기억하고, 검증하고, 다시 결정하는 방식을 실험할 수 있는 작은 운영체계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그 운영체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AI 기획자로 살아남기 위해 제가 계속 던질 질문들을 기록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